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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원인터뷰] 페미니스트와 동네산책 - 김다미편
군포여성민우회 조회수:142
2021-10-18 17:17:31

 

<김다미선생님과의 산책은 당정역주변 공원 소녀상 앞에서 만나

날이 어둑어둑해질 때까지 이어졌다. >

 

사회복지 관련 일을 오래 해오셨다고 들었어요. 사회복지사로서 여성운동과 연결되었던 지점이 있으셨던 건가요?

사회복지 일을 하고 있지만 사실은 여성운동과 더 깊이 있게 연결되어 있다고 볼 수 있을 거예요.여성운동을 20대 때부터 했으니까. 군포여성민우회 이전에 서울에서 여성단체활동을 했어요.

 

아! 그럼 여성단체와는 어떻게 만나게 되셨나요?

20대 때 친구가 먼저 여성주의 관련해서 공부도 하고 선배들도 만나고 있었던 것 같아요. 친구가 나에게도 여성단체를 같이 가보자고 한 거죠. 지금 생각해보면 그 여성단체를 만난 게 내 삶에서 가장 잘한 일이다.’ 그렇게 생각해요. 사실은 여성단체에 처음 발을 딛는 순간에는 잘 몰랐는데 선배들하고 공부를 하면서 '바로 나의 현실이 여성문제에 아주 직면해 있구나' 생각되었어요. 우리 아버지가 8남매의 장남이고 거기서 딸만 여섯인 집에 내가 장녀거든요. 그러니까 우리 어머니가 아들을 낳으려고 그렇게 딸을 많이 낳았던 거죠.

아들 낳으려고 딸을 계속 낳았던 거, 할아버지를 비롯한 남자들이 물린 밥상에서 여자들이 밥을 먹었던 것, 할아버지가 술 먹고 할머니에게 폭력을 행사했던 것, 이런 것들이 다 ‘여성차별’이었던 거죠. 나의 할머니, 어머니, 나의 일상이 차별적 삶이었어요. 근데 그런 것들을 의식하지 못한 채 살아오다가 여성단체를 접하면서 알게 된 거죠. 그 단체 선배들과는 지금도 언니 동생 하면서 관계를 유지하고 있고, 단체 회원으로도 활동하고 있어요. 이전만큼 적극적으로 활동하는 것은 아니지만 친정같이 생각하고 되게 편안한 곳이죠. 내 마음속 지지대 같은 그런 곳이예요.

 

당시 활동하면서 어떤 것이 좋고, 의미 있었던 건가요?

일단 공부하면서 나의 현실을 깨닫게 되었고, 함께 공부하는 선배들이 하는 말에 무릎을 탁 칠 수 있는 그런 깨달음과 기쁨이 있었어요. 그때는 정말 진지하게 역사, 철학, 경제, 여성주의 등을 공부했었거든요. 그리고 80년대 시대적 상황으로 인해서 같이 데모도 나가고 함께 세상을 바꾸어 나간다는 끈끈한 동지애가 있었죠. 당시 활동했던 단체가 한국여성단체연합 소속이기 때문에 3.8여성대회 같은 행사가 있으면 한국여성민우회와 같은 타 단체들과 같이 준비하는 것도 재미있었어요. 제가 문화부 활동을 신나게 했거든요. 몇 단체가 모여서 문화적인 판이 벌어지고, 공연을 올리기도 했어요.

특히 기억에 남는 것은 3.8 한국여성대회에서 당시 부천경찰서 성고문사건에 대한 극을 올린 거예요. 국민들의 안전과 평화로운 삶을 보장해 줘야 하는 공권력이 명백히 성폭력 가해행위를 한 거잖아요. 있을 수 없는 일인데 그렇게 했었죠. 그런 것들을 이야기하고 굉장히 분노하고 모여서 극을 올리고 했어요.

 

<(김다미 선생님은 뒷줄 오른쪽에서 첫번째)

2018년 미투운동 당시 군포여성민우회 활동가들과 함께한 집회현장>

 

군포에는 그럼 어떻게 오시게 된 건가요?

결혼하고 인천에 살았는데, 남편이 얼마 안 되어서 결혼 전 민주화운동으로 인해 감옥에 가게 됐어요. 그러면서 남편의 누나인 시누이의 권유로 군포로 이사 오게 된 거죠. 그렇게 1993년도에 군포에 와서 이제 30년이 되어 가네요.

여기에 와서 우연히 지역신문을 봤는데 군포여성민우회가 뜬데요, 창립한다는 걸 본 거예요. 그게 1999년도였는데 당시 농협 7층 건물인가에서 창립식을 한다고 해서 그냥 찾아갔어요.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었지만 바로 그날 회원가입하고 활동을 시작했죠. 이미 서울에서 여성단체 활동을 하면서 한국여성민우회를 알고 있었고, 어떤 관점으로 어떤 운동을 하는 곳이라는 이해가 있었으니까 바로 활동에 함께 하게 된 거죠. 그러면서 사무국장, 운영위원의 역할도 했었지요.

저는 활동하면서 지역네트워크 활동이 재미있었어요. (어떤 것이 재미있으셨어요?) 지역에서 발생하는 부당한 것들에 항의하며 뭔가 생각이 맞는 사람들끼리 이야기하는 판이 좋았어요. 우리 안에서 ‘어떤 사안에 대해 1인시위하자!’ ‘이렇게 행동합시다.’ 함께 결의하고 함께 행동한다는 것이. 좋았어요. 스스로 살아 있음을 느끼는 순간들이었죠.

 

당시 활동하면서 가장 중점적으로 활동했거나 중요하게 생각하신 이슈가 있다면 무엇이었을까요?

제가 아들 하나 딸 하나를 낳았고, 키울 때 차별적으로 대하지 않으려고 했어요. 우리 딸도 그렇게 느꼈나는 모르겠지만…근데 그런 건 있었어요. 우리 친정이 딸만 여섯이예요. 옛날에는 이런 말이 있었거든요. 아이를 낳는 것에 있어서 엄마 닮는다고. 이건 전혀 과학적인 근거가 없는 말이잖아요. 그런데도 첫아이로 아들을 낳으니까 마음은 좀 더 편해지더라고요. 무엇보다 우리 친정엄마가 엄청 기뻐하셨으니까요. 장남 며느리로 딸만 여섯 낳은 친정엄마에게도 그런 부담이 있었던거죠.

그래서 돌이켜보면 호주제폐지운동을 참 활발하게 했던 것 같아요. 현장에서 여러 행사를 벌였죠. 우리 어머니가 그렇게 할머니 할아버지에게 아들 낳기를 요구 받았던 것이 다 호주제와 연결되어 있는 거잖아요. 남자만이 그 집안의 주인인 호주제를 폐지해야 하는 운동은 내가 현장에서 발로 뛸 수 밖에 없는 운동이었죠.   

 

사회복지사로서 일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있으셨어요?

군포여성민우회 상근할 당시 한부모사업을 활발히 하던 차에 뭔가 좀 더 배워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대학원에서 사회복지를 공부하고 졸업한 게 2007년이고 그때부터 사회복지 현장에 있었죠. 제가 뭐랄까 성품이 도전적이라기보다 좀 참고 인내하는 그런 게 있어요. 가난한 집 여섯 자매의 맏딸로 자란 영향이 있는 것 같아요. 참고 이해하고 양보하기를 은연중에 요구 받았으니까요. 그러다가 여성주의를 만나서 좀 더 적극적으로 사고하고 깨지는 경험을 하게 된 것이죠. 그러니까 양쪽의 성향이 다 있는데 사회복지사로 일할 때는 그 양쪽을 다 사용하게 되는 것 같아요. 지금은 상담을 하거든요. 노인상담. 이 일에서 가장 맞는 부분은 직접 어르신들과 교육을 한다든가 집단프로그램, 개별상담을 하는 거예요. 만나는 분들이 내 목소리 들으면 우울한 마음이 가신다, 위로가 된다 이렇게 표현해 주시면 정말 이보다 더 큰 보람은 없는 것 같아요.

 

2013년 군포여성민우회 소식지에 ‘박근혜정권에게 바란다’라는 코너가 있었어요. 당시 출범하는 박근혜 정권에 페미니스트로서 각각 요구하는 내용이었어요. 그 중에서 김다미선생님은 여성들에게 안전한 일자리를 제공하라고 요구하면서 당시 선생님의 노동 현장에서의 경험을 나눠 주셨던  게 인상 깊었어요.  

2013년 당시에 기간제 일자리가 계약만료가 되어 새로 일을 구해야 하는 상황이었어요. 그런데 50대에 들어선 중년여성노동자인 나로서는 일을 구하기가 쉽지 않았어요. 제가 사회복지 공부를 늦게 시작했기 때문에 나이가 있기도 했지만, 당시 신자유주의라는 이름으로 노동자의 계약조건 자체가 취약해진 것도 있었어요. 선택할 수 있는 자리가 기간제 일자리로 한정되어 있었고, 일이 익숙해지고 사회복지 현장에서 만나는 사람들(청소년, 한부모, 노인 등)과 신뢰적 관계가 형성되어 재미있게 일을 할 만하면 계약기간이 끝났다고 ‘자연스럽게 해고’되었던 거죠. 2008년쯤 사회복지 현장에 들어가게 되었는데 그때부터 오랫동안 정규직이 되지 못하고 기간제였던 거죠.

사실 이 문제는 여성노동자뿐 아니라 그 사회에서 특히 힘이 없는 사람들 모두의 일이잖아요. 예를 들어 잇따른 고등학교 실습생의 죽음 같은 것을 보면서 정말 인간으로서의 귀함, 소중함이 인식되지 못하는 현실이 안타까워요. 그런데 그 기간제 일자리에 여성노동자의 비율이 매우 크다는 것이 사실이고, 그게 저의 상황이기도 했죠.

 

<군포민우 창립기념일 맞이 진행한 백일장에 김다미 선생님은 상담현장에서 만난

노인분들과의 이야기를 시로 적어 나눠주셨다>

 

저희 올해 창립기념일 기념 백일장 때에도 그렇고, 민우회 소식지에도 시형식의 글을 많이 써 주셨더라고요. 원래 시를 짓거나 글 쓰는 것에 관심이 많으셨나요?

제가 민우회 활동할 때에도 호주제폐지나 평등명절과 같은 이슈에 대해 지역신문에 글을 내곤 했어요. 조용히 앉아서 글을 쓰면 내 마음도 정리가 되면서 참 좋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리고 내가 쓴 걸 읽어보면 위안이 되기도 하고. 그래서 그 시간들을 좋아해요. 지금 노인 분들을 만나 노인들의 삶을 이야기 나누는데 소망이 있다면 노인들의 삶이나 우리들 일상에서 있었던 일을 글로 써서 책을 내는 거예요. 바로 나의 삶, 내 주변의 사람들, 우리네 인생 이야기를 써 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지난번에 내가 백일장에 냈던 것도 실제 어르신하고 편지를 주고받았던 경험을 시로 적은 것이에요. 코로나19로 인해 만나서 상담을 못했던 시기가 있어서 맨날 전화로 상담을 하다가 편지를 쓰기로 마음먹은 거죠. 편지를 받으신 어르신들이 정말 감동을 하는 거예요. 제가 또 편지 안에다 새 편지지와 우표까지 붙인 봉투를 동봉했거든요. 어르신이 답장을 하고 싶으면 그냥 부치기만 하면 되게끔. 근데 한 어르신이 “실장님이 준 편지지에 글씨 틀리면 안되니까 달력에다 미리 연필로 썼다 지웠다가 보고 또 보고 사전 찾아보고 그랬어요.” 라고 말씀하시는 거예요. 이런 얘기를 들으니까 내가 더 크게 감동해서 그걸 시로 표현해 본 거죠. 이런 이야기들을 글로 잘 정리해 보고 싶은 작은 바램이 있답니다.

 

한국여성민우회 30주년 축하하며 써 주진 글에는, 김다미 선생님이 여성운동을 하면서 느꼈던 소회도 같이 담겨있다고 생각했어요. 

성폭력이 난무하던 사회/ 명절이 돌아오면 여성들 가슴에 홧병이 돋아나고/ 이혼이 급증하던 사회였다(중략) / 30년 세월이 흘러 한국여성민우회는 청년이 되었다(중략)/얼굴만 봐도 반갑구나 / 한 하늘아래 여성이라는 이름으로 9개 지역에서 전국을 향해 외쳤으니까

 

지금 읽어주는 것을 들으면서 두 가지 생각이 동시에 드는데요. 나 한 사람의 역할이 얼마나 영향을 미쳤을까? 라는 것과 동시에, 나와 같은 가치관을 가지고 각각의 자리에서 평등사회를 지향하면서 여러 작은 활동들을 펼쳐온 많은 사람들이 있잖아요. 광주, 진주, 원주 등에서 활동하는 분들을 보면 처음 본 얼굴이지만 한자리에 모였을 때 모였다는 사실만으로도 행복하잖아요. 그런 것들이 큰 힘이 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연결될수록 강하다’고 하나 봐요. 군포의 여성들이 연결되고 전국의 여성들이 연결되고 더 나아가 전 세계의 여성들이 연결되어 성차별 없는 그런 평등하고 복지가 실현되는 사회가 빨리 되었으면 좋겠어요.

특히 나이가 들어갈수록 관계가 있어야 하잖아요. 혼자가 아니어야 되거든요. 그러면 이제 어떤 사람들과 어떤 관계를 맺을 것인가 했을 때 여성주의든 아니면 공동체 활동이든 나와 비슷한 가치관을 가지고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활동을 같이 나눌 수 있는 사람들과 더불어 지내고 싶다. 그래야 나 개인으로서도 외롭지 않고 행복할 것 같아요.

그래서 첫째는 내가 즐겁고 행복해야 하고, 그 다음은 나로 인해서 사회가 조금이라도 성장하고 발전할 수 있다면 좋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