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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스트와 동네산책 - 오드리편
군포여성민우회 조회수:227
2021-03-17 17:55:31


 

 

 

#1 비거니즘과 동물권

[초막골 생태공원 초입- 길고양이 급식소– 미로원]

 

 

오드리 평소 산책하는 길로 가면, 저는 따라가려고요.

 

그래요? 사실은 내가 여기 길고양이 밥을 주거든요. 어느 날, 우연히 여기서 고양이 한 마리를 만난 거예요. 제가 고양이를 키우니까 주머니에 항상 고양이 밥을 조금씩 가지고 다니거든요. 딱 밥을 주니까 얘가 진짜 며칠 굶은 애처럼 너무너무 잘 먹는 거예요. 고양이는 영역동물이니까 그때부터 지정된 자리를 만들어서 밥을 주는 거예요.

 

근데 그러고 한달쯤 됐나? 사료를 딱 내려놓으니까 까치들이 막 몰려오는 거예요. ‘아 그동안 새들이 먹었나’ 생각이 들더라고요(웃음) 그래도 고양이 사료는, 캣맘들이 있으니까 이곳저곳 있잖아요. 근데 까치나 고라니는 누가 밥을 주지 않으니까 계속 여기다 밥을 놔요.

 

<오드리의 길고양이 급식소>

 

고양이 집사잖아요. 고양이 자랑 좀 해주세요.

 

그게 우리집은 동물에 대한 역사가 좀 있어요. 옛날에 남편이 개를 데리고 왔었는데, 처음에는 요만했던 강아지가 6개월만에 17~18kg까지 크는 거에요. 아파트에서 그렇게 큰 개를 키우니 민원이 너무 많이 들어왔어요. 그래서 위탁관리라고 동물농장에 나왔던 소장님이 운영하는 동물 훈련소에 보내서 관리를 꾸준히 했어요. 걔가 늙어서 죽고 다시는 키우지 말자 했는데 지금 고양이를 만난 거예요.

 

얘는 딸내미 친구가 구조를 했는데 잠시 임시보호를 부탁받았어요. 얘가 우리집에 온 지 2달 반만에 입양이 돼서 밤중에 새로운 분한테 내려주고 왔어요. 그리고 돌아왔는데 우리집에 걔가 있었잖아요. 갑자기 집이 휑하니, 그때부터 나랑 우리 딸내미는 울고불고 난리가 난 거예요. 나는 막 병원다니고. 근데 2주만에 입양했던 사람이 자기는 못 키우겠다고 연락이 오더라고요. 사실 우리는 그 소식을 기다렸죠. 원래 다시는 동물 못 키우겠다 이런 생각도 다 없이 데리고 와야겠다 이렇게

 

근데 얘를 왜 키우기 힘들어하냐면 얘가 요실금이 있는 아이예요. 꼬리가 없는데, 의사선생님 말로는 사고 당시 괄약근 쪽 신경이 다쳤거나 끊어졌을 가능성이 크대요. 근데 사람을 위한 의학은 굉장히 발달해 있지만 고양이는 아직 거기까지는 아닌 거예요. 그런 거에 대한 임상이나 약이 없어요. 그래서 그냥 사는데, 내가 빨래를 매일 해야 되는 게 있죠. 

 

<오드리네 반려 고양이 '또희'>

 

다큐멘터리<dominion>과 책<아무튼 비건>으로 육식생활과 결별하셨다고 하셨어요.

 

제가 10여년 전에 개 키울 때 동물 구조 봉사활동에 참여를 했었는데, 그때도 비건 시도를 했었어요. 근데 아무것도 모르는데 할 수가 있나요. 그때 이틀인가 3일 만에 삼겹살을 먹었어요. 내가 원래 고기를 엄청 좋아하는 스타일이라 ‘에이 나는 이건 못해’ 그렇게 때려 치웠죠. 그러다가 이번에 코로나 때문에 집에만 있으니까 여러가지 책을 좀 봐야겠다 싶었던 차에, <아무튼 비건> 책 광고를 본거예요. 바로 사가지고 읽었는데, 그 책에서 소개하는 다큐멘터리가 <도미니언>(공장식 축산 실태를 고발하는 다큐멘터리)이었어요. 그걸 보고, 그날 바로 비건이 된거예요, 너무 충격받아가지고. 그때는 죽어도 고기를 입에 못 대겠더라고요. 작년 4월부터 했으니까 지금 10개월 정도 됐어요.

 

근데 작년 12월쯤 되니까 미치겠는거야. 아이스크림도 먹고 싶고, 어느 날은 갑자기 초콜릿이 먹고 싶잖아요? 그럼 그걸 안 먹으면 미칠 것 같은 거예요. 근데 도미니언은 너무 잔혹하기 때문에 다시 보고싶지는 않아요. 우리 딸은 대체육이나 비건 초콜릿 같은 거 열심히 찾아먹던데 나는 솔직히 너무 맛이 없더라고요. 그러다가 이번 명절에 친정아버지네 가서 고기국을 끓여야 했고, 또 고기가 선물로 들어오기도 해서 일년 만에 고기를 먹는데 세상에나, 사람이 미친듯이 막(웃음) 발렌타인데이 때는 홈쇼핑에서 벨기에 초코릿을 파는 거예요. 홈쇼핑은 사람 혹하게 만들잖아요. 그때는 진짜!!! ‘내가 지금 저거를 살지도 몰라, 일분 후에는 자동전화를 걸지도 몰라’ 혼자 그랬어요. 결국은 안 샀지만. 내가 56년동안 육식주의자로 살다가 ‘아 이게 쉬운 일이 아니구나’ 또 느끼고.

 

그래서 며칠전에는 가족들이랑 비건실천에 대해 재정립하는 얘기를 했어요. 시댁에 가서 “고기 안 먹어요” 할 수 없으니까 명절에는 먹자, 그럼 식구들 생일에는 어떡하지? 아예 한달에 한번 치팅데이를 할까? 아니야 그건 좀 심해, 그건 비건이라고 할 수 없어 이런 얘기를 계속 하고 있는 도중이에요. 그래도 비건 지향인 사람들 사이에서는 내가 완벽하게 하는 것보다 많은 사람들이 채식에 대해 알고 동참하는게 중요하다고 하니까 그런 커뮤니티가 많이 도움이 되죠.

 

<오드리가 선물로 준 '아무튼 비건'과 친환경 소재 '허니랩'>

 

 

#2 페미니즘과 민우회

[생태공원 벤치 – 중앙도서관 – 중앙도서관 앞 산책로]

 

민우회와는 어떻게 만난 거예요?

 

2008년에 당시 제가 다니던 교회에서 운영하는 노인대학교 교장이 민우회 전대표님인 김인자 선생님이셨어요. 그 분이 “너희들 다 민우회 와라” 그래서 민우회 다 가입하고. 그때 또 김인자 선생님이 “너 소모임 하나 와라”한 게 여성학 소모임이었어요. 그게 최초였죠. 처음으로 페미니즘 접했는데 어떤 느낌이었냐면, 나는 계속 교회에서 여러 역할을 했지만 이런 시민단체 너무 신선하고 좋았죠. 가입하고 그 다음해 성폭력상담원양성교육을 받았어요. 근데 처음에는 신선하고 재미는 있었지만 다 낯설잖아요. 민우회 오면 좀 뻘쭘하고 활동가들은 바쁘니까 나만 챙겨줄 수 없고. 강사 양성교육 끝나고, 보수교육도 받고, 뒤풀이라도 하면 막 어색한 거예요. 그래서 ‘에이, 안가야겠다’ 이랬죠. 사람들하고 아직 안 친하니까. 근데 바로 제가 활동가했잖아요! 당시 상담소장님이 제안을 해주셔서 그렇게 해를 넘기면서 상담소 활동가로 일했죠. 2013년부터는 계속 성폭력예방교육 강사활동을 해오고 있어요. 이 때부터는 ‘아 내가 이 지역을 떠나지 않는 한, 민우회 선생님들이랑 계속 함께 가는 거구나’ 이런 생각을 하게 됐죠. 그러면서 10년이 넘었네

 

<공원 옆 중앙도서관에 들러 대출한 재중 일본군 '위안부' 증언집 [겹겹]>

 

강사경력이 거의 10년이잖아요. 성폭력예방교육 강사로서 오드리 스스로 인정하는 부분은 무엇인가요?

 

처음에는 경험도 없고 잘 모르니까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내가 무슨 정신으로 그렇게 용감하게 했을까?’ 그래요. 정말 PPT도 내가 만들어보고 이런 건 내 기억에 3~4년 정도 된 것 같아요. 근데 이런 건 있어요, 끊임없이 질문하는 거. 예를 들면 “기존에 우리는 이런 내용으로 했어“ 그러면 ‘왜 그렇게 해야 돼?’ 이런 게 좀 있어요. 그건 성격적인 부분이에요. 제가 걱정도 많고 조그만 일에도 안절부절하는 스타일이라(웃음) 다른 선생님들은 “활동도 오래 했는데 왜 그렇게 어려워 해?” 이러는데, 사실 나는 지금도 교육 나갈 때마다 자신감이 없고 그래요. 좋게 말하면 끊임없이 성찰하는 것이고, 그게 강사로서는 플러스가 되는 것 같아요.

 

한편으로는 10년 가까이 강사활동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성혐오는 더 많아진 것 같고. 그럴 때는 좌절할 때도 많아요. 한번은 학교 강의를 나갔는데 보건 선생님이 나를 ‘군포시 여성민우회’라고 소개한 거예요. 그게 뉘앙스 차이가 되게 크잖아요. 그러니까 어떤 남자애가 “선생님 그거 여가부에요?”이러고, 그러면서 예를 들면 “선생님 메갈이에요?”이런 얘기를 해요. 온라인 통해서 보는 여성 혐오도 너무 심하니까 나 스스로도 ‘이거하면 뭐하겠나’ 불신감이 들고, ‘우리가 1년에 한번 교육을 나간다고 해서 성인지 감수성이 높아질 수 있을까?’ 그런 의문이 드는 거예요. 이런 생각과 긍정적인 것은 언제나 같이 있어요. 어떨 때는 너무 신나고, 어떨 때는 진짜 못하겠다 이렇게.

 

그럼 민우회 활동 하시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다면?

 

상담소 활동 때 지원했던 피해자가 기억에 남아요. 그분을 일년정도 지원하면서 내가 나도 모르게 피해자에 대한 편견이 있었구나, 피해자에 대한 이미지가 나도 모르게 있구나 이런 걸 많이 느꼈어요. 매우 용감하셨거든요.  

 

민우회 행사 중에 기억 남는 거는 박근혜 퇴진 때문에 광화문에 자주 갔거든요. 그때 너무너무너무너무 추웠던 것(웃음) 그리고 한국여성민우회 총회할 때 같이 가서 축제 분위기에 함께 있다 왔던 것. 또 안희정 성폭력 사건 집회 때문에 광화문 갔다가 저녁에 오는 길에 편의점에서 선생님들이랑 같이 아이스크림 먹었던 것(웃음) 함께 가서 우리뿐만 아니라 다른 여성 단체하고 연대하고 ‘우리 만이 아니구나’ 이런 거 느낄 때 좋더라고요.

 

 

#3 에코 페미니즘

[아파트 단지 내 지름길 – 산본역]

 

 

<초막골 생태공원 초입길> 

 

요즘 제일 재밌는 건 뭐예요?

 

그 전에는 넷플릭스도 보고 책도 보고 하다가, 12월부터 온라인 채식 커뮤니티에 들어갔어요. 처음 들어갔던 <채식공감>은 활동이 활발하지는 않더라고요. 그러다 우연히 어떤 사람이 <비건피플>에 초대를 했어요. 거기는 아기자기하게 수다도 떨고 그러면서 정보도 공유하고 그래요. 길고양이 관련한 온라인 카페에도 들어가고 있어요. 근데 내가 그걸 너무 열심히 한거예요. 어느 날부터는 목이 안 넘어가요.  그 정도로 요즘 제일 관심있는 건 그거죠.

 

한국여성민우회 총회에서 <페미니스트로서 내가 꿈꾸는 세상>에 대해 한 문장씩 적는 순서가 있었잖아요. 그때 오드리는 “여성들의 힘으로 기후위기, 동물권 에코에코하게”라고 남겨주셨어요. 에코페미니즘이란 말을 쓰지만, 많은 사람들에게 페미니즘과 생태/동물권이 곧바로 연결되지는 않잖아요. 오드리는 이것을 어떻게 연결시키고 있나요?

 

왜 환경이나 동물권에 여성들이 더 관심을 많이 가지게 되었을까? 생각해보면 그건 이 사회에서 여성이 약자고 소수자이다 보니까 동물이나 약자가 학대받는 것을 보면 더 공감하는 것 같아요. 어떤 사람들은 '여자들이 공감능력이 뛰어나서 그래, 착해서 그래' 이래요. 근데 그게 아니라 차별받은 경험, 소수자라는 위치 때문에 그런 것 같아요. 개인적으로 저는 민우회가 그동안은 당면한 과제라고 해야되나? 그런 것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들이 있었다면, 그리고 선배들이 그런 당면한 차별, 혐오에 대해 싸웠다면 이제는 다가오는 기후위기나 동물권에 대해 공부하고 대응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요. 그래서 올해는 기후위기나 생태에 대한 공부모임, 소모임부터 시작해볼까 생각하고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