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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원인터뷰] 페미니스트와 동네산책 - 상수리편
군포여성민우회 조회수:189
2021-04-15 12:53:52

 

페미니스트와 동네산책
-상수리편-
평소 회원들의 산책길을 따라다니며 나누는 도란도란 인터뷰 <페미니스트와 동네산책>
3월 인터뷰의 주인공은 바로 에코페미니스트이자 환경운동 활동가로, 민우회 여성학 소모임원으로서 활발한 활동을 했고, 지금도 이어가고 있는 ★상수리★

 

<페미니스트와 동네산책 상수리편은 상수리가 살고 있는 대야미 주변 반월호수에서 진행됐다>

 

에코페미니스트로서 상수리는 생태주의랑 페미니즘이 처음부터 만났던 건가요?

 

아마도 그랬던 것 같아요. 내가 살면서 재밌는 일화가 많았으면 좋겠지만 그런 순간은 잘 없고 얼레벌레 살다 보니 지금 이 상황이 되어 있는 거라 어떤 순간을 얘기하기가 어렵네요. 생태주의랑 페미니즘이 내 안에서 어떻게, 언제 만났을까요? 저는 불의에 저항을 해본 경험이 있든 없든, 억압과 불평등을 경험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근원적으로 페미니스트라고 생각을 해요. 그리고 생태주의적 전환을 해야겠다 생각을 했던 시기는 제가 채식을 시작했던 시기랑 비슷한 것 같아요. 여행을 갔다가 요만한 새끼 돼지가 죽는 걸 우연히 봤어요. 새끼 돼지의 주인이 이 돼지를 팔려고 끌고 나오는 길에 교통사고가 일어난 거예요. 새끼 돼지가 되게 고통스러운 비명을 지르면서 이건 정말 울음이라고 밖에 설명할 수 없는 울음을 울고 있었어요. 도축을 하려던 돼지를 병원에 데려가지는 않을 거 아니에요. 주인 할아버지는 길가에 쭈그리고 앉아서 담배만 피우고 있고. 저는 그 앞에서 좀 앉아 있다가 길가에 있는 음식점에 가서 만두를 시켰는데 못 먹겠는 거예요. ‘아, 난 돼지고기는 평생 못 먹겠다’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내 삶을 좀 바꿔야겠다, 어떤 전환을 해야겠다고 결심하게 된 순간이었어요. 단순한 계산인데요, 가축의 대상이 되는 성돈의 무게가 100~120kg 이래요. 그리고 대한민국 성인이 1년간 소비하는 돼지고기의 양이 평균 20kg 이래요. 그럼 내가 5년 동안 돼지고기를 안 먹으면 한 마리는 덜 죽어도 되잖아, 이런 계산을 했던 거죠. 어떤 고기가 아닌 살아있는 돼지를 만나 본 게 그전에도, 그 후에도 없어요. 동물권 문제에 대한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면서 생태주의적 각성을 하기 시작한 것 같아요.    

 

어떻게 활동가가 되셨어요? 녹색당 당직자셨고, 지금은 안양의왕군포환경운동연합에서 활동하고 있다고 알고 있어요.

 

활동가로 생활하게 된 거는 당직자 된 뒤부터예요. 그전에도 NGO 단체에서 일을 하기는 했었거든요. 근데 큰 조직이었고 활동가라기보다는 직원으로서 일을 했던 시기였어요. 그러다가 아까 말씀드렸던 여행을 갔다가 새끼 돼지의 죽음을 보고 각성을 하고 놨을 때, 우리나라에서 갑자기 녹색당을 만든다고 녹색평론에 나온 거예요. 그때는 ‘녹색당 만드나? 설마 되겠어?’ 그랬어요.(웃음) 그러다가 페트라 켈리라고 독일 녹색당 만드신 분의 전기를 무슨 계시처럼 무심코 꺼내서 보게 된 거예요. 그리고 녹색당 검색해보니 경기 녹색당이 막 창당을 했다는 거예요. 이게 뭐지 싶었어요. 그렇지만 계속 직장생활하면서 참여는 당원모임에 나가는 정도였어요. 근데 밀양 투쟁을 계속 연대하면서 그 경험이 충격이었나 봐요. ‘나는 귀농을 해야겠다, 더이상 밀집된 도시에서 다른 지역을 착취하는 방식으로 살아가면 안 될 것 같다’ 이런 생각을 가지고 직장을 그만두게 되었죠. 그리고 여기저기 땅을 보러 다녔어요. 근데 제가 직장 생활 7~8년 해서 모은 돈으로 당연히 땅을 살 수 없었고요(웃음) 이게 다 30대 초반에 있었던 일련의 사건들이에요.  

땅을 못 사는구나 그럼 빌려야겠다 이렇게 어정어정 다니고 있을 때, 경기녹색당은 지방선거를 앞두고 있었어요. 내가 뭔가 도움이 될 만한 일이 일이 있을까? 해서 포토샵도 할 줄 알고 길거리 선전전도 아주 잘한다고 얘기했는데, 대뜸 후보가 필요하다고(웃음) 그래서 지방선거에 녹색당 비례대표로 나갔죠. 당선 가능성도 없고 정치적 야망 같은 것도 없었지만 어쨌든 전국에 되게 많은 당원들을 만났고 그 만담들을 통해 얻은 것도 되게 많았어요. 그렇지만 선거가 끝나고 웬만하면 정당활동 같은 건 안 하고 싶다, 선거라는 게 너무 힘든 거예요. 우리가 아무리 이길 가능성이 없다는 것에 대해 미리 마음을 먹는다 해도 막상 선거에 임하면 소위 ‘선거뽕’을 맞아요. ‘아니 경기도에서 20%만 득표하면 되는데?, 내 주변 사람들은 다 녹색당 찍는다던데?’ 이렇게(웃음) 그렇게 선거를 치르고 나서 웬만하면 여기를 도망가고 싶었는데 회계 정산도 해야 되고, 선거 평가도 해야 되고 할 일은 쭉쭉쭉 있잖아요. 그렇게 운영위로서 3번의 선거를 직간접적으로 치르게 됐어요. 그 사이에 저 개인적으로는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고, 육아휴직도 가졌죠.

 

<화단 중간이 텅비었지만 실제로 보면 아주 예쁜 반월호수 튤립화단>

 

육아휴직 시기에 민우회를 만나게 된건가요?

 

결혼하고 이 동네 대야미에 농지가 많다길래 홀려가지고, 한번 땅 가까이 살아보자 해서 남편 따라서 왔는데, 여기 제 친구는 아무도 없는 거예요. 회사 동료들 말고, 당원들 말고는 군포에 아는 사람이 시댁 식구들 밖에 없는 거죠. 그러니까 말할 사람이 너무 필요한데 제 친구들은 다들 성남에 있고 또 여자친구들이 결혼하고 여기저기 흩어지다 보면 연락도 끊어지고 아이 낳고 정신없이 살다 보니 연락 자체도 잘 안되고. 친구가 되게 필요했거든요. 뭔가 어른다운 대화를 할 만한 사람이 너무 만나고 싶은 거예요. 아기는 너무 예쁘고 좋지만, “맘마 먹었어 우쭈쭈, 기저귀 갈아줄까” 말고 대화를 할 수 있는 사람을 만나고 싶은 거예요. 그래서 아기를 들쳐 업고 산본역으로 간 거죠. 처음에는 주민참여예산 관련 무슨 강연을 들었던 것 같아요. 그때 뜬눈을 만났는지, 빅뱅을 만났는지 아무튼 정말 좋았어요. 물론 문화센터에 가서도 강연은 들을 수 있지만 민우회는 애 엄마가 강의나 행사 참여하다 말고 모유수유하고 이런 게 괜찮은 분위기였어요. 여성학 소모임 때는 당시 빅뱅이 저랑 비슷한 시기에 둘째를 출산했거든요. 그래서 소모임 할 때 우리는 책상에서 같이 커피 마시면서 얘기하고, 아이들은 돗자리 깔아 놓고 그 위에서 비슷한 또래 아가들이랑 어울리고 이런 게 너무 좋았어요. 그리고 특히 좋았던 게 민우회는 생필품을 살 수 있는 매장도 같이 있잖아요. 오늘 저녁 뭐해 먹지? 하면 집어갈 수 있는 된장이 있고, 스파게티 면이 있고, 아이 양말도 있고, 내 옷도 거기서 하나 장만하고 모든 걸 한 번에 해결할 수 있는 애엄마들을 위해서 최적화된 공간인 거예요.

 

당시 여성학 소모임 후기를 민우회 소식지에 쓰셨더라고요. 거기서 태어날 때부터 페미니즘에 접근할 수 있고, 교육을 들을 수 있는 아이들은 자라서 어떤 인생을 살까? 벅찬 기대가 보이더라고요.

 

참 조기교육을 시키고 싶은데. 우리 딸도 공주 얘기 엄청 좋아하거든요. 근데 종이봉투 공주라는 동화가 있어요. 공주님이 용에게 잡혀간 왕자님을 구해오는 얘기인데, 가는 길에 옷이 다 타버려서 종이봉투 하나만 걸치고 가거든요. 그래서 종이봉투 공주님이에요. 여기서 그 왕자가 구하러 온 공주님을 보고 ‘종이봉투 따위를 입고 있다니, 넌 공주가 아니야’ 이런 식으로 반응을 하는 거죠. 거기에 공주는 ‘그럼 넌 나의 짝이 될 가치가 없어’ 이러면서 자기 갈 길을 갑니다. 너무 좋은 얘기잖아요. 근데 토리는 여기에 흥미를 안 느끼더라고요. 토리를 붙들고 사정사정해가면서 끝까지 읽어줬어요. 근데 토리는 ‘공주가 왜 종이봉투를 입은 거냐, 그러면 종이봉투는 무슨 색이냐, 종이봉투에 리본이 달렸냐’ 이런 식의 스테레오 타입이 강하게 각인이 되어 있는 것 같고, 그거에 반하는 얘기는 잘 안 받아들이는 것 같아요. 이 아이가 자라면서 만나게 될 학교 친구들, TV나 유튜브에서 듣거나 보게 될 얘기들은 가부장제가 굳건하게 뿌리내린 얘기들일 거예요. 그래도 민우회에 한 번씩 놀러 가고 뭔가 선생님들을 만났을 때 리프레시 되는 게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해요.

우리 아이도 자라면서 민우회 총회도 갈 것이고, 애가 말을 알아들을 나이가 되면 강연도 같이 갈 것이 때문에 민우회 회원으로서 토리도 훌륭한 페미니스트 여성으로서 성장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러니까 우리 딸이 잘 크려면 민우회에서 좋은 교육과 공간을 잘 마련해야 돼요. 이게 오늘의 핵심이다(웃음) 군포여성민우회가 아주 탄탄하고 안정적으로 지역사회에 뿌리를 내리고 잘 버티셔야 해요. 미래는 토리예요(웃음) 

 

저는 비혼이고 아이도 없지만, 페미니스트로서 아이를 육아한다는 것, 그것도 특히 딸을 육아할 때 엄청 혼란스러울 것 같다는 생각을 항상 해왔어요. 내가 양육자로서 아무리 노력한다 해도 성차별 사회에서 곳곳에 함정이 도사리고 있잖아요.

 

오늘 있던 일이에요. 회사 여자화장실이 두 칸인데, 제가 문을 열고 나오니까 여자아이가 “아 깜짝이야” 그러는 거예요. 그래서 “놀랐어요? 미안해요” 말하고 손 씻는데, 아이가 후닥닥 들어가는 거예요. 어쨌든 말을 튼 사이가 됐으니까 “급했나 보네요” 이렇게 얘기를 건네니까 엄청 급했대요. 그래서 “왜 옆 칸 비었는데 안 들어가고 기다렸어요?” 물어보니 그 친구 엄마가 옆 칸이 비워질 때까지 기다렸다가 들어가라고 그랬대요. 공중 화장실에서 여성살해사건과 불법촬영이 있었으니까 딸에게 당부한 거겠죠. 슬프잖아요. 그 친구가 여자아이이기 때문에 더 많이 공포심을 가질 수밖에 없고, 공중화장실도 마음대로 쓰지 못하는 불편함을 느껴야 하고, 위축되는 경고를 들어야 하니까. 근데 당시에 그 얘기를 딱 들었을 때는 “아 나도 이 얘기 토리에게 꼭 얘기해 줘야지” 이런 생각이 드는 거예요. 내가 경험했던 일들이나 위험한 상황들이 있으니까 주의하고 조심하라고 가르치는 건 어느 정도 맞죠. 근데 애한테 어느 정도까지 주의를 주는 게 맞는 것인지에 대한 혼란함이 있는거죠. 남자애들과 관계 맺기가 진행되면 더 많은 부분에 대해서 혼란이 있을 것 같아요. 내 아이를 더 다독이는 방식, 내 아이에게 행동의 제한을 긋는 방식으로 내 아이의 안전을 보장받고 싶겠죠. 근데 내가 아무리 주의를 준다고 해서 어떤 일이 피해 가지는 것도 아니잖아요. 뭐랄까 좀 의미 없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하고 그래요.

 

페북에 토리 얘기가 엄청 많더라고요. 토리와의 대화에서 애정이 철철 넘치는 게 너무 드러나고 몇 번이나 울컥했어요. 의식적으로 기억하려고 글을 올리시는 건가요?  

 

그냥 원래 일기를 써요. 쓴 것 중에 남에게 보여줘도 좀 덜 창피한 것 일부를 올려요. 일기장에는 엄마 방귀냄새를 토리가 어떻게 표현하는가 이런 게 더 많아요 (웃음) 저는 딸을 낳은 게 정말 감사해요. 아들이었어도 물론 예뻤겠지만. 나의 어린 시절을 한 번 더 사는 느낌이 있어요. 저는 이름이 너무 남자아이 같은데, 이 이름이 사실은 아들을 많이 바랐던 집안에 큰딸로 태어나서 태어나기 전부터 정해진 이름이었어요. 이름을 다시 지을 수도 있었을 텐데 처음에 기대했던 성별의 이름 그대로 쓰셨더라고요. 둘째 동생은 남자아이였고 부모님도 그렇고 저에게도 다행스러운 일이었죠. 저는 결혼할 생각 별로 없었는데 결혼을 했고, 애가 생길까 안 생길까 했는데 바로 생겼고, 낳았고, 그게 딸이었어요. 근데 딸을 키워보니 나의 유년시절이 계속 반추가 되는 거예요. 이를테면 저는 어릴 때 되게 소극적이었고 나와 친밀한 사람이 아니면 별로 말하지 않았어요. 근데 제 딸이 그렇더라고요. 그래서 그런 거 있잖아요. 그때 엄마가 나한테 이렇게 해줬으면 어땠을까? 하는 걸 내가 딸에게 해줄 수 있다는 게 너무 기뻐요. 내가 스스로를 치유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게 딸에게 더 나을지 아닐지 모르거든요 사실은. 그렇지만 저는 제가 부모님에게서 성장기에 받았던 어떤 상처들을 극복하기 위한 어떤 수단으로 딸에게 다른 방식의 말 하기를 택하는 것 같아요. 제가 치유받는 느낌이 있어요. 나는 할 수 있는 최선의 말들을 아이에게 해주는 것 같은데 아이도 나와 비슷하기를, 좋은 의도였다는 것 정도는 이해해 줬으면 좋겠어요.

 

<이른 벚꽃 개화로 마지막 꽃놀이 시간!>

 

페이스북 자기소개에 < 안양의왕군포환경연합 활동가 / 페미니스트 / 주양육자> 이렇게 쓰여 있더라고요. 하나하나 상수리에게 중요한 정체성인 것 같고, 순서도 의미가 있을 것 같아요. 일하는 곳, 직업을 가장 먼저 쓰셨잖아요. 일하는 사람으로서 상수리는 일을 어떻게 의미화하고 있나요?

 

제가 중요하다고 느끼는 환경운동을 할 수 있게 되어서, 그리고 주변에서도 그렇게 인정해 주기 때문에 만족도가 큰 것이 분명히 있어요. 그런데 이 일이 아니더라도 무슨 일이든 간에 일을 안안하고 못 살 것 같아요. 언젠가 친구들이랑 기본소득에 대한 얘기를 했어요. ‘기본소득이 주어지면 빈둥빈둥 놀지 누가 일하겠냐’ 이런 우파의 논리가 있잖아요. 근데 기본소득이 주어져도 나는 분명 일을 할 거고, 돈을 많이 버는 게 목표가 아니더라도 사회적인 관계를 맺기 위한 일을 할 거고, 대부분의 사람도 그럴 거라고 저는 생각해요. 근데 여건이 안 되는 경우가 많죠. 저 같은 경우는 운 좋게도 시댁이 가까이 있고, 되게 협조적이어서 돈을 벌기 위한 일이면서 사회적으로 의미 있다고 생각하는 일을 할 수 있는 거예요. 그래서 저에게 일은 제가 서있을 곳을 알려주는 것 같아요. 어디로 걸어가야 하는지 알려주는 게 일인 것 같고, 그게 저한테 굉장히 중요하고 그걸 할 수 있는 여건이 된다는 것에 매우 감사해하고 있어요.

 

마지막 질문입니다. 2016년 즈음 페미니즘 리부트라고 불리는 지금의 시기, 격렬하게 투쟁하는 여성들을 볼 수 있는 시대를 살아갈 수 있어서 너무나 즐겁다고 하셨어요. 지금 시점의 상수리의 생각은 어떠세요?  

 

물 들어왔을 때 노저어야 한다. 불붙었을 때 갈 수 있는 만큼 가야 한다! 제가 오래 산 건 아니지만 어떤 한 운동이 이렇게까지 힘을 받는 것은 되게 많은 조건이 겹쳐야 가능한 것이지 않습니까? 지금 이 페미니즘 리부트가 역사를 다시 쓸 기세로 가고 있는데 좀 더 급진적으로 좀 더 격렬하게 방향을 꺾었으면 좋겠다 그런 생각은 들어요. 물론 펜스룰 같은 것들이 생기고 현실적으로 부당한 상황들을 젊은 여성들이 겪어야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요.  

근데 페미니스트들 간에도 굉장히 다른 생각들을 가지고 있을 것이고 그중에 저 같은 에코페미니스트는 마이너 중에 마이너잖아요. 우리가 서로를 좀 더 경외하면서 가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예를 들면 나도 무의식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여성혐오 단어 안 쓰는 거.

제가 녹색당 당직자일 때 아줌마라는 단어 때문에 공론화를 한 적이 있었어요. 어떤 분이 저를 두고 상당히 비하적인 의미로 ‘애 키우는 아줌마’라고 지칭을 했어요. 공론화 과정에서 어떤 사람은 ‘아줌마 맞으면서, 그럼 네가 아가씨냐’며 저를 조롱하기도 했어요. 아가씨라고 불렀으면 그건 그거 대로 문제인 거죠. 그 맥락이 아닌 거잖아요. 나는 그와 함께 일하는 직장 동료였는데 동료인 나를 낮추어 부르기 위해서 그 단어를 사용한 거잖아요. 그 단어가 아줌마였든, 아가씨였든 그게 다른 맥락에서는 비하가 아닐 수도 있겠죠. 근데 그 상황에서 저에게 ‘애 키우는 아줌마’라고 얘기했을 때는 제가 정말 중요하게 생각하는 정체성이 제거되잖아요. 저는 일하는 여성이고 직업적인 부분에 있어서 최선을 다하고 있거든요. 그런 활동가로서 역할을 제거하고 애 키우는 아줌마가 일하러 나온 것으로 얘기할 때 제가 느끼는 상실감이 되게 컸어요. 그 일을 겪으면서 나는 그럼 아줌마라는 말을 어떻게 사용했을까 반성하게 되는 거예요. 친구들이랑 농담할 때 “아줌마 다 됐어” 이런 식으로 사용했었는데. 그래서 그것이 무엇이든 소수자를 지칭하는 말을 비하하는 말로 사용하지 않아야겠다는 결심을 했어요. 더 많은 사람들에게 더 많은 존중감을 가지고 더 친절하게 대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게 보편적인 민주주의 아닐까 싶어요.